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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새 정부는 한국에 3가지를 청산하라
  • 독도시사신문 편집국
  • 승인 2020.09.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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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개벽TV 이근봉 대표 ]

일본 정부는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는 것을 모른척하고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일본 새 정부가 들어서면 먼저 한국에게 깨끗이 청산해야 할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강제 징용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합니다.

세 번째, 독도 문제.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 맞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우선 일본 새 정부가 1차 해결되어야 한국하고 원만한 외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안용복은 1693년 능로군으로 군역을 마친 그는 어민 40여명과 함께 울릉도 부근에서 전복을 따면서 일본의 오타니 가문의 어부들과 자주 부딪쳤다. 당시 안용복은 일본 어부들에게 “왜 남의 바다에 와서 고기를 잡느냐”고 호통을 치고 항의해 봤지만 결국 일본 오카시마로 납치 되었다. 안용복의 1차 도항 때 안용복 나이가 36살, 숙종 19년 1693년 3월 18일이다. 안용복이 일본에 붙잡혀 갔을 당시에 오카슈지방의 태수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안용복의 거세고 논리적인 반발에 밀린 태수는 그의 주장을 문서로 작성해 막부의 판단과 신병처리를 물었다. 막부의 회신은 5월에 도착했다. 막부는 안용복등을 나가사키로 이송지시하면서 울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 내용 서계 써주게 하고 안용복도 풀어주고 일본 어부들에게 독도 부근에 가서 고기를 잡지 말라고 했다. 안용복 1차 서계를 받아온다. 도쿠와 막부 정부로부터 안용복은 베짱과 타고난 논리로 외교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후에 계속 일본 어부들이 독도에 와서 고기를 잡기에 안용복은 1696년(숙종22년) 제2차 도항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 일개 평민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밝히는 놀라운 일반 외교를 펼쳤던 것이다.

* 참고로 안용복의 도일활동은 숙종실록, 승정원일기, 동국문헌비고, 기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제 2차 일본에 건너갈 때는 3월 조선어민을 대거 이끌고 갔다. 안용복은 32척의 배를 동원했고 160명이 되는 규모였다. 그리고 그는 울릉우산양도관세관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준비한 관복을 입어 정식 관원처럼 행사했다. 물론 가짜였다. 자기 임의대로 만들어서 한 행위로 훗날 알게 되어 귀향살이도 한다. 조금 있다 업적이 훌륭하여 바로 풀려났다.

안용복은 1차때 1693년에 일본에 가서 서계를 받아오고 2차 때 1696년에 다시 서계를 받고 다시는 울릉도 독도에 가서 고기를 잡지 말라고 일본 정부가 어부들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영토이며 우리 함께 숨을 쉬며 민족의 맥이 우리에게 흐르고 있다. 안용복도 독도의 영웅이다. 그의 동상이 울릉도와 부산 수영공원에 있다. 이제부터 독도는 대한민국 시작과 저녁을 알리는 민족의 혼이다. 

 

독도시사신문 편집국  dokdosi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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