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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운동과 민족주의-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 독도시사신문 편집국
  • 승인 2019.09.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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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유시민토론회 회장 손은봉 교수]

1919년(기미년)3.1 독립운동이 있은지 올해로 100주년이 되었다. 이날 오후.2시를 기해 33인의 민족대표는 서울 태화관(泰華館)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고 이시각보다 앞서 수천명의 남녀 학생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외치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에 들어갔다. 3.1운동은 어떤 외래사조의 자극에 기인한 것이 아니요 우리 민족의 자생적인 민주 시민 운동이였고 3.1운동에 참여한 각계 각층 사람들은 스스로가 깨닫고 성숙된 자주자립의지의 분출이였다. 이러한 우리의 3.1운동은 비폭력의 전민족적 저항운동으로써 같은해 5월에 일어난 중국의 5.4 저항운동이나 그 뒤에 일어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는 세계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5.4운동은 베이징에서 대학생들의 시위로부터 시작되어 전 중국으로 확대된 반일 민족운동이였으며 1915년 베르사이유 조약의 파기를 내건 이 운동은 처음에는 학생들만 시위에 참여하였으나 그 뒤 지식인 노동자 일반 주민까지 합세하여 군벌친일파에 반대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인도의 경우 비폭력 불복종운동은 1919년 “로레트법”과 관련이 있는데 로레트법은 영국이 1차 대전 이후 인도와의 원래 약속을 무시하고 그들의 식민통치를 강화하기위하여 재정된 반선동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선동자는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으며 배심원 없이 재판할 수 있는데 이에 항거 1920년 인도인들은 국민의 지도자인 간디를 중심으로 완전 자치를 주장하며 저유명한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렇게 세계사에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이러한 운동의 기저에는 우리의 3.1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소위 학자연 하는 사람들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불편할 때는 3.1독립운동정신을 꺼리는 인사가 있다. 그동안 3.1독립운동을 E.H.카(Edward Hallett Carr)의 이른바 미련학파(未練學派.Might have been)적 요구가 끼어들곤 하였으며 3.1운동거사 때 민족지도자들이 비 폭력이 아니라 무력항쟁을 하였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느니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에 기대지 않았던들 하면서 역사적으로 엄연한 사실을 가상공론으로 공론공박을 일삼는 부류가 있는데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역사의 과정은 우리 역사뿐 아니라 영국의 웨스트 민스터 가제트는 1907년 아주 귀한 논문을 공모한 적이 있다. 여기엔 이미 역사적 사건을 달리 가정(假定)하고 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결과를 쓰는 논문 이였는데 여기에서 입상했던 트라베리언은 “워터루 전투의 승패를 마음대로 뒤집혀 놓았다. 물론 ”만일“이라는 가정에서다. 그는 워터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겼다면 유럽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 이라는 가설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또한 2차대전사 연구의 권위자 ”죤루각스“는 히틀러를 소재로 그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데 만일 히틀러가 영국과의 싸움에서 이겼더라면 전투의 판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를 확신에 찬 문맥으로 쓰고 있다. 결론은 의기충천할 줄 알았던 나폴레옹은 전쟁이 끝나면 딴 사람처럼 차분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역사는 가상(假想)이나 ”만일“에 라고 하는 상투어에 위협당할 수 없다. 여기서 굳이 지난 세계사들을 들추어 가정(假定)이라고 하는 허구론을 시비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주변에서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한국침략은 낙후된 한국산업화의 틀을 마련해주었다는 등 허구에 찬 합리화를 추종하고 있는 아류들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민족주의을 생각한다. 한국민족주의 기본 맥은 반일(反日)이다. 민족주의란 본시 침략자로부터 억압당하고 호도된 것으로부터 민족주의는 결집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의 민족주의 결집은 일본으로부터 그 맥이 형성된다 .그런데 민족주의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침략주의자나 그 당사국이 화해와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성찰과 화해와 화합의 악수가 없을 때 민족적 반감은 지울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1770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19세기전반기에 줄곧 반영(反英)운동을 해왔으며 당시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영국왕 조지 3세였다 뿐만 아니라 1861년 민족통일을 이룩한 이탈리아도 전후 19세기를 통하여 반 오스트레일리아 운동이 전개되었고 1차 대전 후에도 폴란드는 18세기후반 줄곧 반러, 반독 운동을 전개해 왔다. 다만 그들은 침략당사국으로부터 역사의 진실과 화해의 성찰이 뒤따랐던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3.1독립운동 100주년, 그리고 광복 74주년. 일본은 우리에게 더 이상 반일(反日)의 대상도 극일(克日)의 대상도 아니다. 진정 민족주의 갈등을 허물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역사 왜곡 등 역사의 진실을 바로 쓰겠다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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