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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바르게 알자 ➀

많은 사람들이 독도가 대한민국 땅인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독도가 자기 영토라 말하면서 마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독도는 서기 512년 지증왕(13년)때 이사부를 통하여 울릉도를 정리하고서 선포했다. 그러나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 언제부터 인가가 아리송하다.
  독도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영토이다. 그래서 독도는 명백한 사실로 한국의 역사책에 분명히 기록 되어 있다. 이러한대도 일본이 주장 하는것이 얼마나 억지 주장인가를 독도의 명칭으로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 과정을 정리해 볼까 한다.
지증13년(서기512)는 독도가 ‘우산도’라 불리고 성종7년 (서기1470)년 ‘삼봉도’라고 했고 정종18년(서기1794년)는 ‘가지도’ 라고 했고 고종37년 (서기1900년)는 ‘석도 ’라고 했고 고종43년(서기1906년) ‘독도’라 불렸다.

  우산도( 牛山島)는 처음에 우산도를 부를 때는 고구려 말에서 높은 지대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불리였고 독도 명칭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 지어 살펴보다면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년이 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삼봉도 三峰島: 세 개의 봉우리로 된 섬이라는 뜻

  일본은 현재 우리의 옛 기록에 나타나는 삼봉도는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가 삼봉도의 형상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그 다음은 작은섬, 다음은 암석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한다.’ 라고 되어있다.

다음으로 일본의 전보신문 (戰報新聞)1906년 5월 27일자 기사에는 러.일 해전의 전장(戰場)으로 독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지형을 설명하면서 동도와 서도 그리고 관음도(觀音島)라 하여 3개의 섬을 열거하였다. 또한 이 신문에 실린 독도의 전경사진에는 3개의 섬 즉 ‘삼봉도’ 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제3국의 자료를 살펴보면, 1849년 3월 독도를 목격한 미국 포경선 윌리암톰슨호는 그 항해일지에 “3개의 바위를 보았다.” 라고 기록하였다. 즉, 독도의 모습을 ‘삼봉도’로 파악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독도가 삼봉도였음은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제3국의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의 진실성은 오늘날 해상에서 독도를 관망해 보면 누구나 ‘삼봉’의 형상을 하고 잇는 사진은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 “한국기록에 나타나는 삼봉도는 울릉도에 불과하다.”라는 일본의주장이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우리 의 기록이 구체적이고 정확했다는 것도 함께 알 수 있다.

2. 가지도(可支島) : 가지는 물개라는 말로서 물개가 많은 섬이란 뜻
   석도(石島) : 섬 자체가 바위로 되어 있다는 뜻

  ‘석도’라는 말은 ‘돌’의 전라도 방언 독인 ‘독섬’을 한자로 표기 했고, 이는 당시 울릉도에 개척 원주민으로 왔던 전라도 사람들이 사용하던 명칭을 그대로 적었다는 주장이다.
  1900년 10월에 발포된 대한제국 칙량41호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부르고 군수를 파견하며 울릉전도, 죽도, 석도를 관할하도록 정하고 있다. 여기서 울릉전도는 울릉도를 , 죽도는 울릉도 동쪽에 접해 있는 죽서도를,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석도라는 명칭은 그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돌섬’이라는 뜻을 한자말로 옮겨 놓은 것으로 돌로 된 섬이 라는 ‘돌섬’의 사투리가 ‘독섬’이고 그것의 소리와 뜻을 따라 ‘독도’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듯이, 석도는 역시 돌섬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3. 독도(獨島) : 돌섬이 초기 이주민인 전라도 남해안 출신 사람들에 의해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독도로 표기됨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문헌 가운데서 ‘독도’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일본 측 문헌이다. 일본 군함 신고마루는 1904년 9월 25일자 항해일지에 울릉도에서의 탐문 결과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한국 사람이 독도獨島라는 표기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이근봉 총재  dokdosi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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