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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란?
  • 독도시사신문 편집국
  • 승인 2018.11.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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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유시민토론회 회장 손은봉]

요즘 적패청산(積弊淸算)이니 공정(公正)한 사회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럼 공정한 사회란 무엇을 말하는가?

공정한 사회란 법과 원칙을 확립해서 누구에게나 기회 균등하게 적용되는 사회가 곧 공정한 사회다. 다시 말하면 법과 원칙이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 그 어떤 특권과 반칙이 통하지 않은 사회가 곧 공정한 사회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각에서 보는 우리사회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한마디로 “아니 올시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보라! 연일 쏟아지는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반칙들을... 어디 고위 공직자들 뿐이겠는가? 아니다.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소위 특권층인사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시속말로 “이러한 지도층 인사 내지는 특권층의 3대 필수 과목으로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투기는 기본이요 여기에 세금포탈은 선택이요 부전공은 논문조작 이다” 라고까지 하는데 오죽하면 이런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왔겠는가?

우리가 이쯤 하여 되돌아볼 것이 있다. 그것은 특히 정치지도자들의 언행이다. 이들은 저마다 경제가 어쩌고, 선진국진입이 어쩌고 하면서 마치 저들의 치적이라도 되는 양 호도 하고 있는데 선진국이란 결코 경제의 크기만이 아니라 도덕의 크기임을 알아야 한다. 선진국의 전제조건으로는 우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들 수 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원래 프랑스어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뜻 한다. 계급사회의 역사가 오랜 유럽에서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즉 명예(noblesse)와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럽사회 상류층들의 의식과 행동규범이 되고 있다. 한 예로 아직도 왕실과 귀족제가 유지되는 영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고위층자제가 다니는 이튼칼리지 출신중 약 2천명이 세계1.2차 대전에서 전사했으며 미국의 경우에도 미군 현역장성의 아들 140여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그중 35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당시 미8군 벤플리트 장군의 아들 또한 야간폭격의 임무를 수행중 전사(戰死)했으며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도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이때 아들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마오쩌둥은 아들의 시신(屍身)을 포기하라고 명령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뿐만 아니다. 일찍이 강철왕 카네기와 석유재벌 록펠러에서부터 지금의 세계최대 갑부인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통해 축적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미국부자들의 기부문화도 바로 이러한 노블레스(nobiesse) 오블리주(oblige)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미국이 경제의 크기만으로 선진국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이들이 있기에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성숙한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부자들을 무조건 죄인시하거나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하지는 않는다. 자! 그럼 지금 우리사회는 과연 어떤가? 심지어 화장장 까지 봉투를 줘야 대접받는 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정계, 재계, 법조계, 교육계, 의료계, 스포츠 문화 예술계, 심지여 종교계에 이르기 까지, 돈 봉투 커미션문화는 별 죄의식 없이 그야 말로 광범위하게 자행되어 왔다. 여기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공범자다. 그러나 비록 공범자라고 하긴 했으나 이렇게 한물로 싸잡은 것은 어딘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 때문이다.

이 나라가 적어도 공정(公正)한 사회로 가려면 우선적으로 관료사회가 변해야 한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도 일찍이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청렴도의 불문율이 있었다. 즉 사불(四不)이란 공직자가 부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곧 일불(一不)이요, 재임 중 땅을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불(二不)이요 집을 늘리지 않은 것이 삼불(三不)이요 사불(四不)은 고위 공직자가 그 고을의 명물을 먹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삼거(三拒)란 고위관료로서 세 가지를 거절하라는 것으로 우선 윗사람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일거(一拒)요 설혹 청을 들어주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답례를 받지 않음이 이거(二拒)요 재임 중 경조사에 부조를 일체 받지 않은 것이 삼거(三拒)라 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엄격한 공직자의 윤리규범을 지금의 잣대로 재기란 무리가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공정한 사회실현을 위하여 지금의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한번쯤 귀담아 들어야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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