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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경영학의 철학적 뿌리인 한국사상가에서-깨달음경영학에 관한 연구의 비전
[이재윤 경영학박사, 경희대학교 후마니티스 칼리지 '깨달음의 경영학' 전담강사]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 정신과 사상인 홍익인간 366사는 인간의 정신의식 발현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철학적 사상적 깊이에 있어서 정밀하고 웅대한 면을 보이고 있어 인류 문명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헌학적 연구에 있어서 발견 문헌이 후대의 것이므로 문헌에 의한 시대적 고증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내용의 깊이와 영감을 주는 면에 있어서 그 의미와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일찍이 깨달음경영학을 창시하면서 깨달음의 뿌리인 홍익인간 366사의 정신의식을 21 세기 실제 생활에 맞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 경영, 경제, 정치와 일반 사회생활에 실체로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지표화 계량화 측정 및 수치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저는 지난 수십 년간 외롭게 탐구해 온 것은 사명감을 실천하는 개척자로서 참으로 보람 있는 일 이었다

홍익인간 366사를 고대의 철학과 사상으로 연구하는 선행 연구는 소수 있으나 일반 사회생활 즉 개인,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세계 인류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실체로서 활용할 수 있는 연구는 전혀 없는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연구 풍토가 참으로 안타까움을 넘어서 참담함과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홍익인간 366사는 8강령을 기초로 하여 구성되었으므로 이는 수치화를 위한 좋은 문헌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8강령도 태극으로 표현이 가능하며 태극은 수리학적으로 2진법으로 표현이 가능한 좋은 수리적 상수를 의미하고 있다.

홍익인간 366사는 또한 그 근본의 전제는 81자로 이루어진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고대 인류사의 최초로 발원한 것으로 고대로부터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실천 철학 및 사상이다.

먼저 태극 사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 태극에 대한 서술을 하고 366사의 8강령에 대한 간단한 정리와 참전계경에 고증된 홍익인간 366사를 순서 있게 설명하겠다.

 

1. 태극(太極)

우주의 우주됨은 원래 근본적으로 그렇게 된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의 신비스런 절묘함이 태극에 있으니 이 밖에는 더 지극함이 없으므로 태극이라 하고 오직 하나 뿐이고 둘이 없으므로 태극이라 이른다.

오직 이 태극이란 것은 지극한 이치의 이로써 실리어 있는 바이고 지극한 기운의 이로 말미암아 운행하는 바이며 지극한 도(道)의 이로부터 나오는 바이다.

 

2. 홍익인간 366사 8강령

제 1 강령 성(誠): 성(誠)은 인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서부터 싹트는 것이며, 하늘이 부여한 깨끗한 본 바탕을 지키고 져 하는 것이다.

제 2 강령 신(信): 믿음이 하늘의 이치와 같이 정당하고 사사롭지 않으며 편중되지 않으며 자연스러울 때 인간의 모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 3 강령 애(愛): 사랑은 기르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며, 어진 성품의 본바탕이 되는 것이다.

제 4 강령 제(濟): 제는 덕을 바탕으로 한 선(善)이며, 도(道)에 의지하여 사람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제 5 강령 화(禍): 화는 악의 결과로 불러 드리는 것이다.

제 6 강령 복(福): 복(福)은 선(善)을 행함으로서 받는 경사(慶事)이다.

제 7 강령 보(報): 보(報)는 하늘이 악에는 재앙으로서 보답하고 착함에는 복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제 8 강령 응(應): 응(應)이란 악(惡)은 재앙으로 응징 받고 선(善)은 복으로 보답 받음을 말함이다.

 

3.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주가 생긴 이래 인류가 지금도 탐구하고 있는 명제이며 모든 종족과 종교에 공통된 질문사항이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행위가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 즉 살아 있다는 것은 氣의 움직임(氣運)이 있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며, 그 반대로 죽어 있다는 것은 氣의 움직임이 없어서 움직이지도 않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움직이되 무작정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움직인다.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그에 필요한 일을 하여야 한다. 필요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외부에 작용을 가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일어나는 외부로부터의 반작용에 의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서 경험이 쌓이게 된다. 따라서 이루는 일과 배우는 일이 무엇인가를 이루는데 필요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이것을 행촌 이암은 <太白眞訓>에서 “性은 낳고자 하고(性欲生), 命은 알고자 하고(命欲知), 精은 오로지 하고자 한다(精欲專)”라고 나타내었다. 이루는 것은 낳는 것이다. 性, 命, 精은 삼일신고에 설명되어 있듯이 사람과 만물(人物)이 이 세상에 나올 때 타고 나는 三眞을 뜻한다. 따라서 어떤 일을 이루고자 무엇인가를 하면서 배우는 것은 사람을 포함하여 세상만물의 타고난 근본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삶이라는 행위를 영위하면서 배우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라는 것을 행촌 이암은 다음의 글로 나타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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