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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일에 생각나는 것
[논설위원장, (사)한국방송신문연합회 회장 이보길]

이번 주말에 모처럼 제3땅굴과 도라산 전망대와 도라산역을 돌아보는 DMZ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엔 남북의 긴장이 여실히 느껴지는 현장 판문점엔 가진 않지만 이번 나들이 길은 나 나름대로의 뜻이 있어서다.

지난 27일로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의 정전협정이 서명된 지 어언 64년이 됐다.

1953년 초여름 서울은 물론 전국은 휴전반대 데모대가 거리를 메우고 동대문운동장 등 공설운동장에서는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군중대회가 연일 열릴 때였다.

나도 그때 동네아이들 10여명과 어른들을 흉내 내 여러 개의 프락카드를 만들었었다. 문구는 “북진통일” 과 “휴전결사반대”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 8군 사령부 정문 앞까지 가서 아이들과 함께 목청을 높여 구호를 외쳤었다.

꼬마들의 데모모습이 우스웠던지 미군경비병들이 제지할 생각은 않고 웃으면서 바라보던 게 생각난다. 어렸지만 나는 전쟁이 나던 해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납북돼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통일이 돼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여하튼 통일에 대한 생각이 절절했었다.

그런데 통일은 아직 간데없고 정전한지 62년이나 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벌써 여섯 번이나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그동안 남침의 원죄를 저지른 북한이 시시때때로 남한에 대해 협박을 일삼고 있고, 계속해 군사적 도발을 하는가 하면, 우리 대통령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해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핏줄을 타고 났으면서도 한편으로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로는 슬프기 짝이 없다.

연전 아내와 딸을 데리고 판문점에 간일이 있었다. 북한군과 눈길이 마주친 딸이 무섭다고 했다. 그러던 딸은 늠름한 자세로 서있는 우리 헌병을 보고는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나도 다발총을 겨누고 아버지를 끌고 가던 65년 전 북한군이 생각난다. 아버지를 뒤 쫒아가는 내게 북한군이 쌍말을 해댔다. “들어가라우! 이 XX 야”

아내도 당시 법원 공무원이던 외삼촌을 북한군이 한강백사장으로 끌고 가 현장에서 총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판문점에 있던 내내 북한군을 쏘아보며 침통한 표정이었었다.

금강산 관광 때도 긴장감은 여전했다. 숙소인 배로 돌아오고 나서야 말문을 트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6.25전쟁으로 인한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있겠지만 우리 가정이야말로 가장 피해를 입은 가정이었다. 가장을 잃고 홀로 3남매를 키우느라 어머니는 무진 고생을 하셨다.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아마 한강물만큼은 되리라.

북한은 이 정전협정일을 전승기념일라고 부르며 국가적인 명절로 지내고 있다한다.

지금까지 남북대치 구도 속에서 대결과 갈등을 통해 낭비한 민족 역량이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한다면 이날이 결코 명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쟁 3년 동안 수백만 명이 인명손실을 입고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됐었다.

그러나 침략자에 대한 응징과 통일의 기회는 무산된 채 분단은 계속되고 있고 북한은 아직도 남침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방에서 교육을 받은 김정은 시대가 왔지만 그의 공포정치는 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북한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 사살사건과 천안함 격침으로 촉발된 5.24조치를 풀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고 천안함 사건도 미국 잠수함이 충돌해 생긴 것이라는 등 왜곡하고 있고 심지어 연평도 도발도 우리책임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6.25의 쓰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층에서 말도 안 돼는 주장을 하는 이런 황당한 일들이 번번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국정원의 자료를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안보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심보인데 국가가 있어야 자신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철없는 정치인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산소가 없으면 사람이 살수 없듯이 안보가 없으면 국가도 살수가 없다.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추는 것만이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휴전일을 보내면서 내년 이맘때는 꼭 아들과 손자 녀석을 데리고 DMZ관광에 나서 특히 우리 아버지가 낳고 살던 철원을 꼭 가봐야겠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내 손주가 어른이 되기 전에 평양도 가고 백두산도 마음대로 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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